계절 밥상 여행


팥잎무침과 콩잎 장아찌가 있는 토속밥상

대구 ‘한정식’

글/사진_손현주(음식 칼럼니스트)

대구에서 계절밥상을 잡아내기는 참 어렵다. 다들 맛있는 집이 별로 없다고 했다. 해서 매번 대상에서 제외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 경험한 대구는 달랐다. 전통을 오래 지켜온 집들이 내놓는 대구만의 토속음식들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일부 정갈한 한정식은 인근에 있는 안동 음식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니 대구의 음식을 맛봐야 미식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어떻게든 넣고 싶었다. 여름과 가을, 두 번에 걸쳐 대구를 방문하며 맛의 줄기를 찾으려고 애썼다. ‘대구’하면 납작 만두와 막창, 육개장, 따로국밥, 생고기(뭉티기), 동인동 매운찜갈비 등 몇 가지 음식들을 주로 언급하지만 난 이보다 대구 사람들이 즐겨먹던 밑반찬이 무엇인지가 더 궁금했다.

“어떻게 왔어요?”
“네?”
“우리 집은 예약 안 하면 밥 못 먹어요”
“......”
“두 분이죠? 1인분에 2만5천원입니다. 오늘은 모르고 오셨으니 방으로 들어가세요”

이게 바로 김씨가 36년간 고집스럽게 지켜온 기본 맛이다. 재료의 시기와 양념의 어울림, 만들어내는 시간까지 집요하고 꼼꼼하게 살피는 것이 바로 맛의 핵심이 아닐까 싶었다. 정신없이 김치 한 보시기를 비우는 사이 단정하게 부친 고추장떡이 나오고, 소 양이 썰어서 한 접시 상에 올랐다. 그리고 기대했던 팥잎 무침이 놓였다. 삭힌 콩잎과 가죽나무 장아찌까지 놓이니 “이거다” 싶다. 일어서려는 할머니를 다시 앉혀놓고 다짜고짜 묻기 시작했다. “팥잎을 삶아서 된장과 고추장, 마늘만 넣고 무쳐. 참기름 안 써. 시골 장에 겨우 부탁하여 만드는 거지. 이거 요즘엔 못 구해. 콩잎도 마찬가지고. 맛 비결이 뭐냐고? 모든 음식은 다싯물이 맛있어야 하는데, 좋은 멸치를 제대로 써야 해”

안동식해 맛이 나는 핑크 빛 물김치에서는 향긋한 생강 냄새도 났다. 된장으로 졸인 고등어조림과 불 맛이 밴 불고기 또한 제대로다. 매년 2월에 280킬로그램의 굴을 사서 1년 치를 담근다는 굴젓은 짜고 맵지만 잘 삭아서 독특한 풍미를 자아냈다. 무엇보다 콩잎을 밥을 싸서 먹는 재미가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밥알이 고슬고슬 살아있다. 지금도 그때그때 냄비밥을 고집한다고 한다. 방문을 열고 손가락으로 짚어 보여주는 장독대에는 된장과 고추장이 가득 들어 있다고 하니 더럭 믿음이 간다.

김치를 두 보시기나 비우고 욕심이 생겨 김치 광까지 엿보았다. 마당 한 번 참 깨끗이 쓸어놓은 집이다 싶었는데 김치광에서 부엌까지 반들반들 정갈하기 그지없다. 자신의 음식에 대한 자신감, 그래서 당당하게 예약을 요구하는 주인, 어느 접시 하나도 뒤지지 않는 맛의 밸런스가 대구의 힘을 읽게 하는, 아니 음식에서 선(善)을 읽게 했다.

글을 쓴 손현주는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여행 작가 겸 사진가로 20년간 잘 다니던 신문사에 홀연히 사표를 내고 2010년 안면도로 귀향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집에서 글을 쓰고 섬을 떠돌며 사진을 찍는다. 그녀는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읽고 쓰며 사진을 찍는 삶을 꿈꾼다. 지은 책으로는 신작 『열두 달 계절 밥상 여행』을 비롯하여 『와인 그리고 쉼』, 『태안 섬 감성 스토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