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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가리는 아이, 어떻게 키워야 하나?

글_손석한(연세신경정신과 원장)

집에서는 말도 잘하고 성격도 밝은 우리 아이가 집 밖에만 나가면 낯을 가린다. 어디 그것뿐이랴? 승강기에서 만난 이웃 어른들이 아이에게 귀엽다면서 말을 건네도 바로 엄마 치마 뒤로 숨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낯가리는 우리 아이, 도대체 왜 그런 것이고 어떻게 키워야 하나?

자녀와 엄마

낯가림 현상은 대개 생후 6개월 무렵부터 생겨난다. 낯가림의 시작은 아이에게 타인을 구별하는 능력이 생겨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나를 보살펴주고 옆에 있는 엄마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울러서 본능적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엄마는 분명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지만, 지금 처음 보는 사람은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불안이 숨어있다. 실제로 아이는 자기방어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의 눈에 뜨이지 않게끔 시선을 피하거나 혹은 울음을 터뜨림으로써 자신의 위험한 상황을 주변에 알리는 것이다. 따라서 낯가림은 아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신호인 것이다. 그러나 유아기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낯가림이 심한 경우에는 타고 난 성향과 부모의 양육태도를 살펴봐야 한다. 일단 타고난 성향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다. 대개 이러한 아이들은 겁이 많고, 변화를 싫어하며, 잘 울거나 보채는 편이다. 또 부모 양육태도의 영향도 상당히 작용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인지(예: 사람들이 너를 잡아갈 수 있어 / 집 밖에서는 다칠 수 있으니까 항상 조심해 등)시키거나, 아이에게 사건 사고가 날까 봐 과잉보호를 하거나, 엄마가 불안해서 아이를 잘 떨어뜨려 놓지 못하는 경우다. 또 아동기가 되어서 특정 상황에서만 낯을 가리는 아이들이 있다. 예컨대 친구 없이 혼자 있거나 새로운 곳 혹은 학원 등에 가면 갑자기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그렇다. 이는 특정 상황에 대한 불안 때문인데 과거의 경험상 특정한 상황에서 힘들었거나 불쾌했던 경험의 기억이 남아 있거나, 아이가 특정 상황에 대한 부정적 예측(예: 친구 없이 나만 가면 분명히 재미 없을 거야 / 학원에서 만나는 선생님은 무서울 거야 / 나는 잘 못할 거야 등)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낯가림은 큰 문제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낯가림에는 장단점이 있다. 먼저 장점으로, 낯을 가리는 아이는 주변을 동시에 살필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자제하기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안전사고를 당할 위험이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줄어든다. 또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찰을 많이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특성이나 성격을 파악하는 능력이 올라갈 수 있다. 게다가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잘 알기에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서 스스로 다양한 시도(예: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자 / 말보다는 고갯짓으로 반응을 보이자 / 다른 생각을 하자 / 혼자서 놀자 등)를 하게 된다. 낯가리는 아이에게 ‘착하다’ ‘수줍음이 많다’ ‘조용하다’ 등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러한 점들을 성장하면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있다. 반면 활동의 반경이 좁아지고 자기 주도적 성격으로 발전하기 어려우며 그로 인해 대인관계에서도 제한된 관계를 맺게 되기 쉽다.
또 낯을 가리는 것이 인사를 잘 하지 않거나 혹은 상대방에게 사회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어서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식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낯가림은 교육이나 환경 등의 후천적 경험에 의해서 충분하게 개선될 수 있다. 임상 진료 현장에서도 현재는 매사 적극적이며 낯가림이 거의 없는 청소년이나 성인들이 어릴 적에는 무척 수줍음이 많고 낯을 많이 가렸다고 말하는 케이스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가장 먼저 개선시킬 수 있는 연령은 만2~3세 정도다. 이 시기에는 일차적으로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안정적이고 긍정적으로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6개월 때 보였던 낯가림이 12개월, 18개월로 시간이 흐르면서 횟수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엄마에 대한 ‘정신적 표상(mental representation)’이 공고화될 수 있기에 가능한 결과이다. 그러나 혹시 부모의 바람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낯가림에 대한 비난은 절대 금물이다. 오히려 아이의 낯가림에 대해서 그럴 수 있다고 공감해주며, 이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더 좋겠다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 엄마가 다른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준다. 이때 아이에게 따라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비록 오늘은 아니지만 나중을 위한 모델링을 보여주는 의미가 더욱 크다. 아이는 나중에 ‘지연된 모방(deferred imitation)’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습 이론에 의하면 ‘보고 배우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기에 엄마의 언행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을 기억하자.

다음은 몇 가지 상황별 대처 방법이다.

사례 1. 낯을 가려서 어른들에게 인사하지 않는 아이

엄마가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고 이유를 물어보는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고, 아이 스스로 ‘나쁜 아이’ 혹은 ‘부족한 아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이의 현재 행동에 대해서 지적을 하는 대신에 올바른 행동을 일러주는 정도로 그쳐야 한다. 즉 “엄마처럼 ‘안녕하세요!’ 인사 해야지.”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억지로 고개를 숙이게 해서 인사 동작을 하게 만드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할 대응이다. 아이에게 큰 수치심을 안겨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례 2. 아는 친구들이 놀고 있을 때 선뜻 다가서지 못하면서 놀고 싶어 쳐다만 보는 아이

친구들에게 다가서고 싶은 마음이 확인되면 아이에게 제안을 해 본다. “직접 가서 친구들에게 말을 걸어봐.” 내지는 “저리로 가서 친구들과 함께 놀아.” 등의 말로 아이에게 필요하고도 적절한 행동을 권유한다. 마음만 있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는 셈이다. 만일 아이가 거부를 하면,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을까봐 그래? 엄마가 볼 때는 친구들이 잘 놀아줄 것 같은데.”라는 긍정적 예측의 말을 들려준다. 그러나 억지로 아이 등을 떠밀거나 혹은 아이를 번쩍 들어서 친구들 사이에 데려다 놓는 행동은 피한다. 이 또한 아이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고, 아이들 역시 엄마가 데려다 줘야 오는 부족한 친구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례 3. 학원 등 새로운 곳에 처음 갈 때

문 밖에서 안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끔 문에 귀를 대게끔 하고, 살짝 들여다보게끔 한다. 엄마가 먼저 들어갔다 나온 다음에 안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전달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안에 들어가 보니까 선생님이 좋아 보이고, 친구들도 다 착해 보여.”라는 말을 해준다. 들어갈 때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들어가고, 아이를 앞세우지 않고 엄마의 뒤를 따르게끔 해서 아이가 느끼는 쑥스러움을 최소화시킨다. 선생님에게 미리 부탁해서 아이를 반겨주고 웃으면서 친절하게 맞이하는 첫 만남도 무척 도움이 된다.

글을 쓴 손석한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의학박사로서 현재 연세신경정신과-소아청소년정신과를 운영하고 있다. 각종 언론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잔소리 없이 내 아이 키우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자문위원으로서 홈페이지에 슈퍼맨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