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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콩 이야기

고소함의 집약체 ‘콩국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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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추억의 8할
어른이 되어서야 아는 콩국수의 맛

두부

기력 회복을 위해 보양식을 찾는 계절이다. 어릴 때 이열치열이란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삼계탕 국물을 마시고, 더위와 싸워가며 닭을 하나하나 발골 하다니. 그나마 있던 기력마저 소진될 것 같았다. 삼계탕은 내게 보양식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다행히 엄마의 생각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집은 무더운 여름이면 뜨거운 삼계탕 대신에 시원한 콩국수 한 그릇이 식탁에 자주 올랐다.
진한 콩국물은 느린 속도로 그릇을 채워갔다. 티끌 하나 없이 새하얀 콩국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깨뜨리기 어려운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엄마는 콩국수를 먹기 전 냉장고에 10분 동안 넣어두었다. 차가워진 콩국수 그릇을 식탁 위로 옮기는 것은 어린 나의 몫이었다. 행여 놓칠세라 그릇을 감싼 작은 손에 힘이 꼭 들어갔다. 그릇에 서렸던 차가운 기운이 두 손바닥을 타고 선명하게 퍼져나갔다. 잠시나마 여름인 것을 잊는 순간이었다.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는 우리 집의 보양식은 단연코 콩국수였다.

어릴 때는 콩국수에 여러 맛을 더해야 먹을 만했다. 지금은 ‘슴슴하다’라고 표현하는 맛을 어릴 때는 ‘맛이 느껴지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콩국수에 설탕을 가득 치거나 간혹 소시지나 햄을 얹어 먹기도 했다. 엄마와 아빠는 어떻게 저 밍밍한 것을 그대로 먹는지 어린아이의 눈에는 콩국수가 어렵고도 묘한 존재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콩국수에서 절제의 미학을 발견하게 된다. 그 어떤 것도 첨가하지 않은 콩국물의 완전한 맛을 알게 됐다고 할까. 양질의 콩을 갈아 만든 콩국물과 쫄깃한 면발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좋은 원료로 만든 요리는 오히려 조리 과정을 덜고 향신료를 줄여야 그 맛이 살아나지 않던가. 콩국수도 마찬가지다. 미각을 곤두세워 담백한 맛을 느끼다 보면 희미했던 고소함이 점차 진해진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상태. 여기에 다른 것은 필요치 않다. 콩국수는 이미 그 자체만으로 완성형 요리인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야 이해할 수 있는 여름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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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밥상을 책임진 든든한 지원군
여름 별미 콩국수

콩국수

콩국수가 한국인의 밥상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전부터다. 1800년대 말에 지어진 <시의전서>를 살펴보면 "콩을 물에 불려 살짝 데쳐서 가는 체에 밭쳐 소금으로 간을 맞춘 다음 밀국수를 말고, 웃기(고명)를 얹어 먹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 콩국수를 만드는 법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옛 선조들 역시 콩의 영양학적 가치를 극찬하며 여름철 별미로 콩국수를 즐겼던 것. 단백질과 지방,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고 동시에 소화까지 잘 되는 콩국수는 여름 음식으로 안성맞춤이다. 여기에 찬 성질의 밀국수를 말고 더운 성질의 열무김치를 찬으로 곁들여 영양학적 균형까지 고려한 세심함을 엿볼 수 있다.

콩

특히 콩국수는 계층을 가리지 않고 누릴 수 있는 평등한 음식이었다. 그만큼 서민들의 여름 밥상에 자주 오르곤 했다. 조선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은 귀현(貴顯)한 자에게로 돌아가 버리고 가난한 백성이 얻어먹고 목숨을 잇는 것은 오직 이 콩뿐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조선 후기 정약용이 기록한 <다산시문집>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춘궁기를 당하여 뒤주가 비는 일이 갈수록 심해져서 콩국 마시는 걸로 만족해야 하니, 참으로 옛사람들에게 부끄럽습니다" 그만큼 콩국은 서민들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 게다가 영양까지 풍부하니 빈곤한 서민들의 밥상 위를 채워주는 지원군으로 이만한 음식이 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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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콩국수 세계
설탕이 들어가는 전라도의 콩국수

전라도의 콩국수

콩국수 맛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담백하다는 의견으로 통일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조미료를 넣을지 의견이 분분하다. 대체로 소금파와 설탕파로 나뉜다. 자세하게 살펴보면 소금은 기본으로 넣고 설탕을 추가로 넣을지 말지에 대한 문제이다. 여기에 전라도의 콩국수 문화가 답이 될 수도 있다.

전라도에서는 콩국수에 설탕이 들어간다. 콩 국물에 기본으로 소금 간을 하고 추가로 설탕을 듬뿍 넣는다. 간간한 맛보다는 달콤한 맛에 가깝다. 소금만 넣는 콩국수가 익숙한 타지역 사람들에게는 매우 신기한 음식문화다. 왜 콩국수에 설탕이 들어가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에게는 설탕과 소금의 시너지 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설탕과 소금은 소량으로도 서로의 맛을 최대치로 올려주는 효과를 낸다. 크게 단맛이 나지 않는 요리에 설탕 한 스푼을 뿌려주면 감칠맛이 극대화된다.

설탕, 소금

콩국수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만들 때 마지막 단계에 설탕 한 스푼을 뿌리면 맛이 한 층 좋아진다. 담백한 콩국수 역시 그렇다. 소금으로 기본 간을 맞추고 설탕을 뿌려 입안의 감칠맛을 극대화시키는 것. 물론 설탕을 얼마만큼 넣느냐에 따라 감칠맛과 달콤한 맛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 수는 있다. 하지만 달콤한 콩국물의 매력에 한 번 빠지고 나면 그 후로는 설탕 없이 콩국수를 못 먹는다는 사람도 있으니, 전라도의 콩국수 문화를 경험해 보고 나서 소금파와 설탕파 어떤 쪽에 설지 결정하는 것도 늦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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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국수 한 그릇 비우면 여름날의 하루가 간다
집에서 손쉽게 만들어 먹는 콩국수

콩국수 만들기

집에서 콩국수를 직접 만들 예정이라면 서리태(검은콩) 콩국수에 도전하는 건 어떨까. 서리태를 삶아서 껍질째 갈아보자. 콩물 맛이 무척 진하고 우유를 섞지 않아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우유를 조금 타면 두유로 마시기 좋고, 소면을 말아 콩국수로 즐기기도 좋다. 주의할 점은 껍질째 간다면 식감이 거칠어질 수 있으므로 곱게 갈아야 한다. 콩국물이 준비됐다면 토핑이나 첨가물로 콩국수에 색을 입혀보는 것도 즐거운 과정이다. 보통 고명은 오이채, 삶은 계란, 볶은 참깨 정도가 보편적이다. 그러나 내가 만들어 내가 먹는 콩국수이니만큼 파격적인 재료를 올려보는 건 어떨까? 수분 가득한 수박, 시원한 토마토, 아삭한 맛의 파프리카 등을 보기 좋게 썰어 올려보자. 하얀 도화지 같은 콩국수 위에 알록달록한 색이 수놓아지니 입으로 먹기 전 눈이 먼저 즐겁다. 맛과 영양이 풍부해지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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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소개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영양사 출신의 요리 연구가 및 푸드 칼럼니스트로서 쿠킹 클래스, 인문학 강의, 방송, 심사의원까지 다채롭게 활동 중이다.
한국일보 <이주현의 맛있는 음식인문학>외 다양한 칼럼을 통해 음식에 대해 재미있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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