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사상구 이상진님
오랜만에 본가를 다녀왔습니다. 도착해 쉬고 있던 와중 욕실에서 어머니께서 부르셨습니다.
"왔냐? 지금 막 네 아버지 등 밀어주려던 참이다. 몸이 불편하니 별수 있냐. 근데 내가 암만 밀어도 안 시원하다고 불평이니 원.."
"아..그럼 제가 밀어 드릴게요."
선뜻 대답했지만 욕실로 향하는 제 모습이 영 어색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버지와 함께 목욕했던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그 횟수도 손가락을 셀 정도였으니까요.
"저..아버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굳이 니까지 할 필요 없데이. 너거 엄마는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가꼬.."
아버지께서 한차례 만류하셨지만 욕실에 들어갔습니다. 말없이 아버지의 등을 미는데 아버지께서도 말씀이 없으시더군요. 젊은 시절 자식들만큼은 잘 먹이고 잘 배우게 하고 싶다며 중동으로 가셨던 아버지. 그러다 보니 만날 일은 기껏해야 1년에 한두 번이 전부였죠. 당신께서는 자식을 위해 그토록 희생하셨건만, 자식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니. 참 아이러니했습니다. 아버지의 무뚝뚝한 성격이야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잘 알면서도 먼저 선뜻 다가서려니 망설여졌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즈음, 아버지께서 간경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하루가 지날수록 배에 복수가 차더니 나중에는 손과 발등까지 부어서 서서 걷는 것조차 힘들었던 아버지. 지금 생각하면 곁에서 살갑게 말동무라도 되어 드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번은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야야 아들, 집에 있으니까 몸도 찌뿌둥하이 영 안 좋다. 내캉 목욕탕 좀 데꼬 가줄래?"
아버지를 부축하고 탕 안으로 들어갔지만 어색해서인지 쑥스러워서인지 대충 씻고 나가는 제 모습을 아버지는 그저 말없이 바라 봤습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오냐, 때 밀라면 시간 좀 걸리니까 카운터에 가서 베지밀이라도 하나 사 묵고 있거라."
한참을 기다리는데 그제서야 아버지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싶어 문을 살며시 열었는데요. 복수가 찬 탓에 거동도 불편한 상태에서 헉헉 가쁜 숨을 내쉬며 비누칠을 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와주겠다며 나서면 괜히 아버지께서 속상해하실 것 같아 그저 문을 닫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젠 저 역시 아빠가 되었는데도 어쩜 이렇게 고등학생 때와 달라진 게 없나 부끄러웠습니다. 옛 추억에 잠겨 있는데 목욕을 마치신 아버지께서 나오셨습니다. 얼른 부축해 드리자 괜찮다며 냉장고에서 유리병을 꺼내셨습니다.
"하나 무라. 니 어렸을 때 목욕탕 갔다 오면서 베지밀 잘 묵었다 아이가. 니도 등 민다고 고생했는데 하나 마시라."
"네, 아버지."
"아이고 확실히 등 미는 솜씨가 너거 엄마보다 니가 훨~낫다. 이래서 집안에 아들이 있긴 있어야 되는갑다 허허."
다 마신 베지밀 병을 사이에 두고 어색함이 오가는 두 사람의 대화였지만, 예나 지금이나 늘 변함 없는 베지밀처럼,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제 마음을, 아버지께서도 누구보다 잘 아시리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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