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어 더욱 집에서만 있게 되다가 간만에 집 밖으로 나가면 말을 하지 않는 아이가 있다. 부모는 아이가 오랫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때문에 친구들과도 어울려 노는 시간이 없었기에 그런가 보다 생각한다. 앞으로 외출을 자주 하다 보면 점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며칠 후에도 혹은 몇 번의 외출 때마다 아이가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을 보면서 걱정하기 시작한다. 대화를 주고받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자. 다른 사람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 또래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걸어도 들은 척하지 않고, 어른들이 귀엽다면서 나이를 묻는 질문에도 눈만 껌뻑껌뻑 가만히 있을 뿐이다. 어떤 아이는 “얘 말 못해요?”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동네 어른들도 우리 아이가 예의범절을 갖추기 못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쯤 되니 부모는 무척 속상하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아이를 야단쳤다. 말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니 “그냥”이라고 대답할 뿐이다. 부모는 당황한다. 급기야 학교 선생님에게 연락이 온다. “어머니, 아이가 학교에서 말을 하지 않아요.” 부모는 아이의 손을 이끌고 필자의 진료실에 찾아왔다. 필자는 아이에게 나이와 학년 등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름을 물어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아이의 기분 상태나 친구들과의 관계 등에 관한 대답은 아예 기대조차 못 한다. 어쩔 수 없이 글로 쓰게 하니 그제야 반응을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다. 말로 하지 않는 대답을 글로 대신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진료실에서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아이가 진료실 문밖을 나가자마자 “엄마, 선생님 방에 콩순이 인형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진료 과정에서 보이는 아이의 이와 같은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아이의 진단은 ‘선택적 함구증(selective mutism)’이다.
선택적 함구증이란?
선택적 함구증은 말 그대로 특정한 선택적 상황에서만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데, 소아기에 나타나는 불안 장애의 한 가지다. 이는 언어 능력에 문제가 있어서 말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안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말을 안 하는 것은 아이의 불안한 감정 상태에서 기인하는 것이기에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기보다는 불안에 압도되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체 아동의 0.03~1%가 해당하기에 그리 흔한 질병은 아니다. 여아에게서 약간 많지만 임상에서는 남녀 차이가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대개 5세 이전에 발병하지만 아무래도 초등학교에 입학한 다음부터 증상이 두드러지게 인식되므로 그제야 병원을 찾게 된다.
집 밖에서 말수가 적은 아이, 어떻게 키울까?
선택적 함구증은 아니지만 집안에서와 다르게 집 밖으로 나가면 말수가 현저하게 줄어들거나 말을 잘 하지 않는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할까? 필자는 다음의 네 가지 방법을 조언한다.
첫째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다.
질문할 때 상대방이 귀찮아하면 어떻게 하지, 혹시 내가 한 말을 싫어하지 않을까, 나를 이상한 아이로 보지 않을까 등을 걱정하는 아이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내가 상대방의 질문에 대답할 때 그것이 틀린 내용이면 어떻게 하지, 상대방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내 대답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지 등을 걱정하는 아이 역시 말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다 상대방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거나 더 나아가 싫어하면 어떡할지 두려운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즉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경우 아이의 질문을 귀찮게 여긴 적은 없는지 또는 아이의 말에 잘 반응하지 않았는지 먼저 반성해본다. 혹시 그랬다면 이제부터라도 아이의 말에 반응을 잘하고, 아이가 무슨 말을 하든지 잘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충분히 들어주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존중해야 한다. 아이는 자신이 부모로부터 거절 받지 아니하고 충분하게 수용되고 있음을 인식한 다음에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만일 부모가 이미 아이와 충분히 대화를 잘 나누고 거부적인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부모는 아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줄 수 있다. “엄마(또는 아빠)가 너의 말을 재미있게 잘 듣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너의 말을 잘 들어줄 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너를 좋아할 거야.” 타인으로부터 거절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아이의 불안을 잠재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사회적 상황에 점진적으로 노출한다.
처음에는 가까운 친구를 집으로 초대한다. 집이라는 편안한 홈그라운드에서 아이가 친구와 함께 어울리는 사회적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집 밖 가까운 놀이터 등에서 역시 아이가 편하게 여길만한 한 두 명의 친구와 어울리는 기회를 만들어주자.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어떤 친구가 좋은지 물어봐야 한다. 또한 부모가 먼저 이웃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도 아이에게 보여준다. 아이가 배우고 모방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다. 인사를 받는 이웃이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고 말도 걸 수 있다. 그러면 아이는 부모 옆이라는 보다 더 편안한 상황에서 이웃과 말을 주고받는 기회를 얻는다. 이와 같이 말을 주고받는 사회적 상황을 점차 늘려나가면서 아이가 자연스레 대화에 임하게끔 해준다.
셋째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하는 연습을 시킨다.
기본적으로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어떤 아이는 조금 전 스쳐 간 자신의 궁금함과 의견, 그리고 동반되는 감정에 대해서 잘 얘기하지 않고 그저 마음속에 담아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에게 “지금 어떤 기분이야?” 내지는 “지금 저것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어?” 등의 질문을 자주 던진다. 아이의 생각과 감정이 말로 표현될 수 있게끔 훈련하는 셈이다. 아이가 처음에는 단답형으로 짧게 얘기하다가 점차 어휘의 양이 늘어날 때 반드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칭찬을 아끼지 않도록 하자.
넷째 세상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끔 도와주자.
질문할 때 상대방이 귀찮아하면 어떻게 하지, 혹시 내가 한 말을 싫어하지 않을까, 나를 이상한 아이로 보지 않을까 등을 걱정하는 아이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내가 상대방의 질문에 대답할 때 그것이 틀린 내용이면 어떻게 하지, 상대방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내 대답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지 등을 걱정하는 아이 역시 말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다 상대방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거나 더 나아가 싫어하면 어떡할지 두려운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즉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경우 아이의 질문을 귀찮게 여긴 적은 없는지 또는 아이의 말에 잘 반응하지 않았는지 먼저 반성해본다. 혹시 그랬다면 이제부터라도 아이의 말에 반응을 잘하고, 아이가 무슨 말을 하든지 잘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충분히 들어주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존중해야 한다. 아이는 자신이 부모로부터 거절 받지 아니하고 충분하게 수용되고 있음을 인식한 다음에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글_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의학박사로서 현재 연세신경정신과-소아청소년정신과를 운영하고 있다. 각종 언론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잔소리 없이 내 아이 키우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자문위원으로서 홈페이지에 슈퍼맨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