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시작한 tvN 드라마 남자친구는 방송 전부터 화제였다. 이유는 단연 주인공인 송혜교와 박보검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촬영지 쿠바다. 지구 반대편 우리에게 낯선 쿠바가 드디어 우리의 안방을 찾아온다. 올드 아바나의 어두운 밤거리, 살사를 추는 말레꼰의 풍경, 거리에서 노래하는 쿠바인들의 자유로운 모습 그리고 노을 지는 말레꼰에서의 그들의 사랑. 여행자의 로망 쿠바는 드라마 속 진혁에게도 로망이었다. 힘들게 돈을 모아 그는 20대 마지막 여행지로 쿠바를 택한다. 지독하게 가난하지만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즐기는, 세상에서 가장 긍정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 쿠바. 거기 가봤어요? 쿠바? 진혁과 수현의 달달한 로맨스가 있는 쿠바 말이에요.
세계를 보다
남자친구의 나라 쿠바, 거기 가봤어요?
글/사진 김춘애
“거기 가봤어요? 말레꼰해변?”
수현과 진혁은 그림같이 파도치는 말레꼰을 걷고 빨간 노을 속에서 살사를 춘다. 말레꼰에 기대 음악을 듣고 그렇게 그들은 말레꼰의 마법에 빠진다. 말레꼰(Malecon)은 스페인어로로 방파제란 뜻이다. 아바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와 접한 어디에도 있는 평범한 것이다. 말레꼰을 ‘말레꼰비치’라고 부르는 것은 어색하다. 말레꼰은 모래가 있는 해변이 아니기 때문이다.
쿠바에서 말레꼰이 갖는 의미는 실로 특별하다. 아바나의 말레꼰은 쿠바의 심장이다. 랜드마크이자 그들의 삶이다. 길이는 8km에 달한다. 1901년에 공사를 시작해 모든 구간의 공사가 끝난 것은 1952년이다. 그저 바다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큰 둑이었다. 뜨거운 해가 바다로 떨어지면 하나, 둘 말레꼰으로 모여든다. 촘촘하게 말레꼰을 채운 사람들을 또 다른 사람들은 구경한다.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여행자가 섞여 밤마다 축제가 벌어지고 음악회가 열리며 춤판이 벌어진다. 고독을 씹고 낭만에 젖고 사랑에 빠지고, 각자의 하루를 그렇게 마무리한다.
말레꼰의 마법은 하루 두 번, 아침 해뜨기 전과 저녁 해진 후다. 한여름 낮엔 말레꼰을 갈 수 없다. 태양이 당신을 까맣게 태워버릴지 모른다. 아침의 조용한 풍경을 즐기려 아바나에 묵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말레꼰을 걸었다는 어느 여행자가 있었다. 그는, 말레꼰을 걷던 시간이 쿠바 여행의 전부였고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했다. 그는 또다시 말레꼰을 찾을 핑계를 만드는 중이다.
“쿠바 마지막 날의 아찔한 사건으로 해두죠”
*산 카를로스 데 라 카바냐 요새(Fortaleza de San Carlos de la Cabana)의 성벽에 수현과 진혁은 걸 터 앉았다. 수현은 진혁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고 둘은 멀리 아바나를 바라본다. 숨이 막히게 아름다운 장면이다. 진혁과 수현은 크리스탈 맥주를 마셨다. 쿠바인들은 맥주를 즐기지 않는다, 아니 많은 이들이 그럴 만한 형편이 못된다. 어쩌면 맥주는 여행자가 부릴 수 있는 작은 사치다. 그들은 기껏해야 싼 럼주 한 병을 여럿이 입을 대고 나눠 마시는 정도다.
수현이 진혁에게 묻는다. “저기요, 돈 좀 있어요?” “얼마가 있으면 될까요?” “맥주 한 병 값?”
모로성에 갈 땐 맥주 한 병을 챙기자. 쿠바에선 맥주 한 병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노을 지는 아바나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진혁과 수현이 있던 카바냐 오새, 카사 블랑카(Casa Blanca)의 예수상 언덕 그리고 *모로성(Castillo de los Tres Reyes del Morro)이다. 아바나 노을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모로성이다. 모로성에서의 뷰 포인트는 시원스레 뻗은 말레꼰과 대서양이다. 노을이 예쁘게 지는 날은 바다가 온통 붉게 물든다.
내가 모로성을 찾던 날 노을은 아바나를 다 태울 듯 붉었다. 여행 중 가장 아름다웠던 석양을 꽂으라면 두말 않고 그날을 말하겠다. 모로성 성벽엔 여행자 하나가 일기를 쓰고 있었다. 노을을 작은 카메라에 담고, 바람에 날리는 한쪽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열심히 정성스럽게 일기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아바나의 노을을 내 카메라에 담았다. 그녀는 그대로 내게 하나의 풍경이었다. 나는 그날 한 장의 엽서를 썼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보았노라고, 쿠바가 내게 준 아름다운 선물 하나를 받았노라고. 그 엽서는 두 달 후 내게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날을 회상했다.
“여기, 언제까지 있어요?”
진혁이 20대의 마지막을 위해 떠난 여행지 쿠바, 작은 카메라 하나를 들고 낡은 거리를 걷는다. 그들과 춤도 추고 함께 웃으며 쿠바를 여행한다. 드라마에서 진혁이 걷던 길은 올드 아바나와 센트로 아바나의 골목이다. 중앙공원(Parque Central)과 *프라도 거리(Paseo del Prado)를 거닐고 말레꼰에 기대 음악을 듣는다.
올드 아바나의 거리,
드라마에서 진혁을 이곳을 지난다.
분노의 질주에도 나왔던 거리다.
여행자가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올드 아바나(Habana Vieja)다. 낡은 건물, 예술미 넘치는 풍경, 거리의 밴드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 쿠바 여행의 맛을 그대로 보여준다. 쿠바에선 올드 아바나 골목을 반나절 정도는 걸어보는 것이 좋다. 여행자가 몰리는 *오비스뽀 거리(Calle Obispo)에선 라이브 음악에 살사를 춰보자. 골목을 걷는 내내 발걸음을 떼기 쉽지 않다. 음악이 끊어질까 싶으면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밴드의 음악이 시작된다. 가게 문 앞에서 살사를 추는 여행자도 있다.
오비스뽀 거리를 지나 대성당 광장(Plaza de la Catedral)으로 가자. 1700년대 지어진 성당, 광장 옆 헤밍웨이 단골집 라 보데끼따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에선 기계처럼 모히또를 찍어낸다. 톡 쏘는 모히또 한 잔에 라이브 음악, *5쿡의 행복이다. 대성당 광장에서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은 골목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르마스 광장을 다 둘러보았다면 비에하 광장(Plaza Vieja)으로 가보자. 메르카데레스 거리(Calle Mercaderes)를 따라 걸으면 비에하 광장으로 연결된다. 가는 길에 라이브 밴드의 공연도 보고 헤밍웨이가 자주 머물렀다는 호텔 암보스 문도스(Hotel Ambos Mundos)도 있다. 비에하 광장은 커피와 맥주 그리고 종일 라이브 음악이 끊이지 않는다. 광장에 면한 2층 건물엔 초등학교가 있어 가끔 아이들의 체육시간을 훔쳐보기도 한다.
쿠바를 시간이 멈춘 곳이라 표현한다. 올드 아바나가 그렇다. 과거의 아바나는 화려했다. 돈 많은 미국인들이 밤마다 파티를 즐기며 그들의 고급 승용차로 밤거리를 달렸다. 술과 마약으로 휘청이던 밤거리, 춤추고 노래하던 그 많은 아티스트, 화려한 건물과 자동차. 남은 건 60년을 거뜬히 견딘 자동차와 낡은 건물뿐이다.
“마법이라 해두죠, 마법......”
진혁이 수현을 클래식 카에 태워 보내며 헤어지던 밤 비친 아바나의 거리는 낮보다 두 배 예쁘다. *잉글라테라 호텔(Hotel Inglaterra)과 *알리시아 알론소 아바나 대극장(Gran Teatro de la Habana Alicia Alonso)은 낮에는 그저 평범한 식민지 풍 건물이다. 밤이면 건물 외벽이 모두 불을 밝힌다. 노란색이 도는 온화한 조명은 평범한 건물을 변신 시킨다. 여기에 중앙공원(Parque Central)과 알록달록 클래식 카가 더해지면 거리는 마치 영화의 세트장 같다.
밤엔 공원 근처 호텔의 루프탑 바에 가보자. 잉글라테라 호텔이나 만사나 호텔(Gran Hotel Manzana) 또는 빠르께 센뜨랄 호텔(Iberostar Parque Central)이 좋겠다. 시원한 바람에 모히또 한 잔, 여행자의 멋을 잔뜩 부려도 그다지 비싸지 않다. 이곳에선 맘껏 사치를 부려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낡은 건물에 둘러싸여 문명이 가져다주는 갖은 혜택을 누리고 있노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70년 전쯤으로 여행 온 기분이다. 나와 내가 있는 곳만 현실이고 나머지는 마치 영화 속 세트 같은, 쿠바 여행의 매력이다.
지난여름 나는 말레꼰에 있었다. 한낮의 열기는 밤에도 좀처럼 식지 않았다. 뜨끈한 말레꼰 시멘트에 등을 대고 누워 하늘을 봤다. 수많은 별이 까만 하늘에 보석처럼 빛났다. 어둠 속에서 쿠바 친구는 살사를 가르치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자 여행자는 그냥 웃어버렸다. 캄캄한 바닷속으로 그 행복한 웃음이 파도처럼 퍼졌다.
세상에 이렇게 로맨틱한 곳이 또 있을까. 마치 마법 같은 곳이다.
“마법이라고 해두죠, 마법”
수현의 말이 머리에서 계속 맴돈다.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이 마법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할 듯싶다. 쿠바 여행 후 여행자가 쿠바 앓이를 심하게 앓는 것처럼.
*프라도 거리 : 중앙공원에서 바다 방향으로 펼쳐진 보행자의 거리다. 지금은 파세오 데 마르티(Paseo de Marti)로 이름이 바꿨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프라도 거리라고 부른다.
*오비스뽀 거리(Calle Obispo) : 일명 여행자들의 거리다. 서울의 인사동이라 생각하면 쉽겠다.
*라 보데기따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 :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모히또를 즐겨 마셨던 곳으로 유명하다.
*잉글라테라 호텔(Hotel Inglaterra) : 아바나의 중앙공원에 위치한 5성급 호텔로 1875년에 오픈했다. 쿠바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이다. 지금은 비록 낡았지만 곳곳에서 고급스러웠을 과거가 회상된다.
*알리시아 알론소 아바나 대극장(Gran Teatro de la Habana Alicia Alonso) : 현존하는 쿠바의 전설적인 발레리라 알리시아 알론소의 이름을 딴 국립대극장이다.
1915년에 오픈했고 최근 리뉴얼 후 작년 새롭게 오픈했다. 오바마 대통령 쿠바 방문 시 연설했던 곳이다.
*모로성(Castillo de los Tres Reyes del Morro) : 1589년에 짓기 시작해 1630년에 완공된 성으로 안에는 박물관이다. 밖의 성벽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다워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다.
*산 카를로스 데 라 카바냐 요새(Fortaleza de San Carlos de la Cabana) : 1763년 ~ 1774년에 걸쳐 지어진 요새다.
*쿡(CUC) : 쿠바의 화폐 단위다. 5쿡은 우리 돈 약 6천 원 정도다.
쿠바 전문 여행작가 김춘애
2007년 처음 쿠바를 여행 후 지금까지 쿠바를 여행 중이다. 2016년 쿠바 가이드 북 <쿠바 홀리데이>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쿠바 여행상품을 개발하고 1년에 두 번(여름과 겨울) 여행 팀과 쿠바를 여행하고 있다. 10년 이상 살사 댄스를 취미로 가졌다. 틈틈이 중남미를 여행 중이고 과테말라 안티구아에서 스페인어를 배웠고 2019년 1월, 여덟 번 째 쿠바 여행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