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페이지만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말이 있다. <꽃할배 리턴즈>의 꽃할배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통한다. 다시 황혼의 배낭여행을 떠난 할배들. 아무리 살아온 날이 많다고 해도 여행은 늘 새로운 도전이다. 낯선 풍경 앞에서 과거를 반추하고 현재를 즐기며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하루하루 역사를 쓰는 것 같았다. 정말 행복했고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둬서 아껴 쓰고 싶다.”라는 김용건의 소감처럼 말이다.
세계를 보다
‘꽃보다 할배 리턴즈’처럼 떠나볼까?
함께라서 더 행복한 동유럽 여행
글 / 사진 우지경
이번엔 동유럽으로
3년 만에 돌아온 tvN <꽃할배 리턴즈>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김용건과 짐꾼 이서진이 이번엔 동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평균나이 78.8세 할배들이 느리면 느린 대로 자신만의 여행을 즐기는 모습은 체코와 오스트리아의 그림 같은 배경과 어우러져 더 큰 감동을 안겨줬다. 그들의 여행을 보며 덩달아 떠나고 싶어지는 이유다.
꽃할배들의 본격적인 ‘동유럽 여행’은 체코에서부터 시작됐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로 가는 기차 안. 멤버들은 옛 추억 이야기에 웃음꽃을 피웠다. 그저 함께 기차여행을 하고 있음에 설렜을 터다. 프라하에 도착한 할배들과 이서진은 프라하의 야경과 마주했다. 이서진은 전망 좋은 곳으로 꽃할배들을 안내했고, 모두는 블타다 강 위에 놓인 카렐교의 야경을 보며 차를 마셨다. 카를교와 프라하성이 어우러지는 밤 풍경 앞에선 누구나 꽃할배들처럼 그 매력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다. 혹은 카렐교를 보며 "갑자기 쌍둥이 손자가 생각이 난다.”라고 한 백일섭같이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당장이라도 이곳으로 소환해 같이 야경을 보고 싶은 이를. 다음 날 꽃할배들과 이서진은 서로를 챙기며 사이좋게 택시를 타고 프라하성으로 향했다. 더 빨리 더 많이 보는 것보다 함께하기 위해 발걸음을 맞추며. 꽃할배를 반기는 프라하성은 약 1000여 년의 역사를 품고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이르지 바실리카, 고딕 양식의 황궁, 바로크 정원 등 중세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건축양식을 만나볼 수 있다. 대대로 체코 왕들의 거주지였으며 현재는 체코 대통령의 관저가 자리한다.
할배들이 점심 식사 후 거닐었던 카를교는 프라하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프라하성과 구시가를 잇고 있어 프라하 여행자라면 최소 1번 이상은 들르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카를 4세의 이름은 딴 카를교는 1402년 완공됐다. 다리 곳곳에 30여 개의 석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 중 성인 ‘얀 네포무츠키’의 조각상에는 신비로운 전설이 깃들어 있다. 왕비에게 정부가 있다고 의심한 바츨라프 왕이 얀 네포무츠키 신부에게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물었으나 신부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화가 난 왕은 신부의 후 혀를 뽑고 블타바강으로 던져버렸다. 얼마 후 그의 시신이 채 강 위로 떠 올랐는데, 그의 머리에는 다섯 개의 별이 빛나고 있었단다. 카를교 끝자락에 위치한 화약 탑 또한 볼거리다. 고딕 양식의 탑으로 17세기 초 연금술사들이 화약창고 겸 연구실로 쓰이며 화약 탑이라 불린다. 카렐교에서 멀지 않은 구시청사 시계 타워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1940년에 설치된 이래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중세의 천문시계로 손꼽힌다. 특히 379개의 톱니바퀴와 태양과 달의 별자리에 따라 움직이는 시계는 정교하다.
꽃할배들과 이서진이 프라하에 이어 찾은 곳은 체코 체스키크롬로프다. 이곳은 14~16세기에 수공업과 상업으로 번영했던 도시다. 체스키크롬로프 성을 중심으로 한 구시가는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1992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체스키크롬로프 성은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성으로 그 위에 오르면 수없이 많은 주황색 지붕이 펼쳐진다
성에 오른 김용건과 박근형은 다리가 아파 성에 올라오지 못한 백일섭을 위해 성 카메라에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냈다. 그런가 하면 이순재는 "우리나라도 5천여 년의 역사를 가졌는데, 남은 것이 별로 없다.”며 아쉬워했다. 체스키크롬로프 성에 이어 망토 다리에 도착한 꽃할배들은 다리 위에서 그림 같은 풍경을 한참을 바라봤다. 김용건은 "그려도 이렇겐 못 그리겠다"며 눈을 떼지 못했고. 이순재는 "이건 완전히 로맨스 풍경이다"며 고전 영화인 '우리 생애 최고의 해'를 떠올리기도 했다.
체코를 떠난 꽃할배들이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먼저 여행한 도시는 잘츠부르크다. 잘츠부르크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고향이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 지금도 잘츠부르크에는 구석구석 모차르트의 숨결이 남아 있다. 구시가와 신시가를 가로지르는 잘차흐 강 위엔 모차르트 다리가 놓여있다. 모차르트 다리를 건너 구시가에 들어서면 모차르트 동상이 있는 모차르트 광장이 펼쳐진다. 광장 옆 동화처럼 아름다운 게트라이데 거리 9번가에는 노란색 외벽이 돋보이는 모차르트 생가가 있다. 그는 이 집에서 태어나 6세에 첫 작곡을 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 앞에서 연주를 선보인 후 유럽 곳곳을 누비며 음악 신동으로 성장했다. 꽃할배들도 이곳을 찾아 모차르트가 사용한 악기와 자필 악보, 애장품 등을 둘러봤다.
한편, 미라벨 정원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주인공이 아이들과 분수를 돌며 노래하는 씬을 촬영한 장소다. 그 장면을 기억하는 이라면 누구나 꽃할배들처럼 영화 속 노래를 흥얼거리며 미라벨 정원을 구경하게 된다. 추억의 영화 속 배경을 찾은 할배들은 실감이 안 난다며 감탄을 연발했다. 특히 신구는 "줄리 앤드류스가 아이들과 춤추던 곳에 내가 올 줄 몰랐다"며 기뻐했다.
잘츠부르크를 조금만 벗어나면 알프스 봉우리 사이로 호수가 반짝이는 잘츠카머구트가 펼쳐진다. 이서진과 꽃할배처럼 샤프베르크산을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 잘츠카머구트의 경치를 즐기노라면, 구름 위에서 노니는 것 같다. 보트를 타고 볼프강 호수를 누비다 보면 마음에 잔잔한 여유가 번진다. 에메랄드빛 볼프강 호수를 병풍처럼 두른 알프스의 진면목을 보려면 꽃할배들처럼 츠뵐퍼호른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15분 만에 해발 1,552m 정상에 도착하는 빈티지한 4인용 케이블카다. 케이블카를 탄 꽃할배들은 거울처럼 맑은 호수와 호숫가 집들이 빚어내는 풍광이 그림 같다며 눈을 떼지 못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정상에 서면 ‘12개의 산봉우리’라는 뜻의 츠뵐퍼 호른 이름에 걸맞는 수많은 고봉이 지평선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여행의 피날레, 오스트리아 빈
마침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입성한 꽃할배들은 쇤브룬 궁전에서 마차를 타며 일정을 시작했다. 쇤부른 궁전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지은 여름 궁전이다. ‘아름다운 샘’이라는 뜻의 이름은 정원에 샘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드넓은 바로크식 웅장한 정원을 둘러보려면 꽃할배들처럼 또각또각 경쾌한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달리는 마차, 피아커(Fiaker)를 타는 게 현명한 일이다. 정원의 백미는 프로이센과 전쟁에서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비 글로리에이터.
글로리에이터에 서면 분수와 전원, 쇤부른 궁전을 물론 빈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한편, 동서로 1.2km, 남북으로 1km 크기에 1,441개의 방을 갖춘 궁전 중 40개의 방이 대중에 개방돼 있다. 그 중 거울의 방은 모차르트가 6살에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한 곳이다. 참고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18세기 유럽에서 정략결혼으로 오스트리아를 견고하게 지켜낸 군주였다.
쇤부른 궁전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놓치면 아쉬운 또 하나의 궁전은 벨베데레다. 벨베레데는 클림트의 ‘키스’를 비롯해 ‘유디트’, ‘연인’ 등을 전시하고 있는 궁이다. 클림트의 팬들은 어둑한 전시실 안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키스’를 마주한 순간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눈을 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키스 맞은 편에 걸린 유디트는 클림트 특유의 관능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행의 마지막 날 이순재와 신구가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벨베데레 궁전 2층 창 너머로는 빈 시내가 한층 더 가까이 내려다보인다.
벨베데레 궁전 너머로 보이는 건물 중 첨탑이 돋보이는 건물은 자유시간에 박근형이 찾아간 성 슈테판 대성당이다. 성 슈테판 대성당은 800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건축물로 ‘빈의 혼(Soul of Wien)’이라 불린다. 2개의 첨탑을 둘러싼 건물은 여러 건축 양식이 혼재돼 있다. 12세기에 로마네스크풍으로 지었는데 14세기에 증축하며 고딕 양식이 더해졌다. 남쪽 탑에선 서면 슈테판 광장이 장난감처럼 아득하게 보이고, 북쪽 탑에선 오스트리아의 상징인 독수리 문장을 새긴 타일 지붕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 탑은 343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지만 북쪽 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번에 오를 수 있다. 성당 내부가 빛을 발하는 때는 일요 미사 시간. 현악 사중주와 성가대의 합창이 감미롭게 어우러진다. 하이든, 슈베르트도 이곳에서 소년 성가대원으로 활약했다.
꽃할배들이 빈 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한 곳은 빈 국립 오페라극장이다. 1869년 5월 25일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초연한 이래 쭉 같은 자리를 지켜온 공연장이다. 매년 300회 이상의 공연을 그것도 매일 다른 레파토리로 선보인다. 궁전만큼 화려한 인테리어는 탄성을 자아내고, 좌석마다 설치된 자막 스크린은 공연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여기에 정상급 성악가의 공연과 청중의 열정적인 관람 태도가 더해져 명품 극장을 완성한다.
꽃할배들이 관람한 공연에서는 비발디의 '사계' 중 봄, 푸치니의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등 클래식 명곡이 이어졌다. 특히, 공연에 심취한 김용건은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마치 나를 위한 음악회 같았다. 오래 전에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파노라마처럼 (옛날 일들이) 펼쳐졌다. 자꾸 연상됐다."고 아련한 추억에 젖었다.
글 / 사진 우지경
늘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여행작가다. <배틀트립>, <오스트리아 홀리데이>, <포르투갈 홀리데이> 등 여행 책을 여러 권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