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박사 K 다이어리


아이의 알레르기

글_김종엽(건양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전문의)

알레르기는 아이를 둔 엄마의 주된 관심사 중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아토피성 피부염 등 알레르기 체질을 갖고 태어나면 아이의 고생이 정말 크니까 말이죠. 더욱이 알레르기 질환들은 한 번 시작되면, 치료마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모 맘도 모르고 알레르기의 유병률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부유해지고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알레르기 환자가 늘어납니다. 후진국에서는 거의 없는 병이 알레르기 질환이거든요. 이 사실을 바탕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위생 가설’입니다. 이 단어는 아이들을 너무 깨끗하게 키워서 면역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고, 그래서 알레르기와 같은 면역 질환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엄마들의 고민은 시작됩니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깨끗하게 키워야 한다고 말하고 반대쪽에서는 아이를 흙에서 놀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위생 가설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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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르기가 어떤 병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알레르기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알레르기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야 합니다. 알레르기라는 큰 범주 안에는 비염, 천식과 식품 알레르기, 아토피성 피부염이 모두 포함됩니다. 이 병들은 모두 신체에 위험하지 않은 물질에 몸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런 현상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데 면역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유해한 물질을 막아내기 위한 반응으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항체입니다. 면역세포에서 만들어지는 항체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여러 물질(항원) 중 해로운 것들만 골라내서 공격하는 파수꾼입니다. 그런데 알레르기란 우리 몸에 해롭지 않은 항원에 대해서도 무분별하게 항체가 생산되는 상태입니다. 알레르기는 면역력 저하가 아니라, 사실은 면역력 과다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알레르기는 왜 생기는 걸까요?

면역 시스템의 이와 같은 오류가 발생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그 동안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중 비교적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가설이 ‘위생 가설’입니다. 아이들의 면역체계는 태어난 후 해로운 세균이나 기생충과 접촉하면서 유해한 항원들을 선별하는 능력을 키워가게 되는데 사회가 현대화되면서 너무 깨끗해졌고 그 기회를 박탈당하자 면역체계의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내용입니다.

1989년 한 연구에서는 한 명 이상의 형제자매가 있는 아이들의 알레르기 유병률이 형제자매가 없는 아이들보다 낮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형제, 자매가 많을수록 아이들이 바이러스성 질환에 노출되는 일이 많으니, 면역력 획득에 유리했을 거라는 게 이 연구를 진행한 학자의 의견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그 후로 거의 20년 가까이 위생 가설을 뒷받침하는 대표 연구로 인용되었지요. 그런데 2007년에 들어 육아시설의 아이들의 알레르기 유병률에 대한 추적 관찰 결과가 보고되면서 위생 가설은 다시 미궁으로 빠집니다. 가설대로라면, 육아시절에서 여러 아이와 함께 자란 아이들의 알레르기 유병률이 낮아야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천식 유병률이 높았던 겁니다. 위생 가설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육아 시설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또 다른 요인이 있었을 거라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2009년에 형제, 자매 수와 천식의 유병률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면서 상황이 정리되었습니다. 더 많은 수의 아이들을 관찰하자 형제, 자매의 수와 천식 유병률은 아무 상관관계가 없더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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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 가설은 여전히 가설일 뿐입니다

위생 가설의 증거로 인용되는 논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위생 이론이라 불리지 못하고, 가설로 남아 있는 건 단편적인 몇 개의 연구결과만으로는 현대의 위생적인 환경이 알레르기를 유발한다고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아이를 둔 부모는 위생 가설과 관련된 이야기를 흘려 듣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위생 가설은 알레르기의 발병에 대한 고민이지, 알레르기의 치료 방향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는 겁니다. 너무 깨끗하게 키워서 알레르기가 생겼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알레르기 질환에 이미 걸린 아이를 더러운 환경에 노출 시키는 방법으로 알레르기를 치료할 수 있다는 근거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알레르기 아이들은 위생적이며, 알레르기 자극이 적은 환경에서 키우는 게 답입니다. 특히 아토피 피부염을 가진 아이들은 자주 씻기지 않아야 한다고 아는 엄마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건 비누로 자주 씻길 경우 피부가 건조해지기 때문에 아토피가 심해지는 현상에서 비롯된 이야기입니다. 깨끗한 게 나쁜 게 아니고, 비누로 인한 피부 건조가 나쁜 거죠. 덧붙여 알레르기 환아들에게 위생보다도 더 중요한 건 알레르기 자극 요인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겁니다. 세균보다도 아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알레르기 증상을 유발하는 여러 항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느냐고요?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알레르기를 막고자 더럽게 키운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저는 그냥 피부에 자극이 적은 유아용 비누로 아이를 씻기고, 집 안 공기를 자주 환기시켜주는 정도의 노력으로 아이들을 키웁니다. 아이들의 면역력이 약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굳이 비싼 돈을 들여 멸균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쓴 김종엽은 건양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의사 아빠 깜신의 육아 시크릿』, 『꽃중년 프로젝트』, 『꽃보다 군인』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게 늘 즐겁다는 그는 KBS <비타민>, 팟캐스트 <나는 의사다> 등 꼭 알아야 할 건강 상식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