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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떠나다

별 헤는 시인의 어린 시절을 담다

영화 '동주' 촬영지, 고성 왕곡마을

영화 속 배경,
고성 왕곡마을

영화 '동주'는 북간도의 용정에서 시작한다.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열사가 나고 자란 곳이다. 흑백 화면 속의 마을은 그 시대로 돌아간 듯 자연스럽고 정감 있다. 그곳은 북간도의 용정과 똑 닮았다는 강원도 고성의 왕곡마을이다.

왕곡마을은 중요민속문화재 235호로 지정된 민속마을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북방식 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북간도의 집성촌과 주거형태가 비슷해서 촬영 장소로 최적이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북방식 기와집 20채와 초가집 50채가 볕 잘 드는 남쪽을 향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은 그야말로 고즈넉하다.

왕곡마을은 고려 말에 이성계의 조선건국에 반대해 낙향한 함씨 가문이 은거하며 눌러앉은 마을이었다. 조선 초 이래 강릉 최씨도 이 마을로 합류해 집성촌을 이뤘다. 길지 중의 길지란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번도 전쟁에 휘말린 적이 없다. 6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산처럼 고요했던 마을은 여전히 평온한 모습 그대로 사람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다.

영화 '동주' (DongJu; The Portrait of A Poet, 2015 )

시인의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는 순수했고, 치열했다. 영화는 시인의 얼굴과 동시에 열사의 얼굴을 그려낸다. 둘은 다르지만 닮았다.
윤동주(강하늘 분) 시인과 송몽규(박정민 분)열사는 1917년에 태어난 동갑내기 사촌지간이다. 두 사람은 용정에서 함께 나고 자라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송몽규는 윤동주보다 먼저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연희전문학교 졸업식에서 대표로 상을 받았다. 그런 송몽규가 마치 불나방처럼 독립운동에 뛰어들 때 윤동주는 시를 썼다.
시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송몽규가 "세상을 바꿀 용기가 없어서 문학 속으로 숨는 것밖에 안 되니?"라고 외치며 세상 속으로 뛰어들 때 윤동주는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씌어지는 것'조차 부끄러워 시(詩)의 편에 섰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던 그는 1945년, 스물여덟 살이 되던 해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했다. 영화는 같은 시대에 태어난 두 청년의 모습을 흑백으로 담아내며 죽어서야 시인이 될 수 있었던 시대를 말한다.

영화 '동주' 속 명소, 왕곡마을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새소리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담장 옆으로 피어난 꽃들이 운치를 더한다. 항아리를 엎어 놓은 굴뚝이 정겹다. 불길이 초가지붕에 옮겨붙지 못하도록 한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19세기 이후에 지어진 한옥들은 여느 한옥마을과 달리 독특한 구조를 보인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기 위해 쌓은 담장은 집 뒤편을 반만 둘렀다. 대문과 앞쪽 담이 없어서 낮이면 따뜻한 햇살이 마당을 온전히 차지하고, 눈이 많이 와도 외부와 고립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한옥은 바람이 잘 통하는 대청마루를 자랑하지만, 이곳에는 대청마루가 온데간데없다. 대신 집안의 온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부엌에 외양간이 붙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여물을 줄 수 있는 구조다. 폭설이 내려도 고립되지 않기 위해 집의 기단을 높였고, 눈이 미끄러져 내려가도록 지붕을 기울였다.

왕곡마을

영화 '동주'의 촬영지였던 큰상나말집이 눈에 띈다. 너른 마당에서 윤동주가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 사진이 액자에 걸려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요즘 보기 드문 슬레이트로 마감된 왕곡 정미소는 영화 속 모습 그대로다. 동주가 앉아 시집을 읽던 장면, 잡지를 만들던 장면이 떠오른다.
고즈넉한 마을 산책을 마치고 나면 마음에 바람이 불어온다. 오늘 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려니 싶어 괜스레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파트너스 커피 로스터스

작가가 추천하는 고성의 핫 스팟

하늬라벤더 팜

보랏빛은 언제 보아도 마음이 설렌다. 고성의 라벤더 농장에선 매년 6월이면 우아하고 매혹적인 보라색 꽃이 지천으로 피어나 관광객을 맞는다. 은은한 라벤더 향기가 온몸을 감싸면 그야말로 황홀해진다. 라벤더는 원래 여름 내내 꽃을 피우지만 하늬라벤더팜에서는 보통 7월 초에 꽃을 추수한다. 7월 이후의 초록초록한 언덕도 매력 있지만, 이왕이면 꽃이 한창일 때 방문해 보자. 바람이 불어 연보랏빛 파도가 치는 언덕에서 인생샷을 남기면 해외의 유명한 관광지가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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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의 하늬라벤더팜에서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라벤더를 길러왔다. 그 정성으로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사랑받는 여행지로 등극했다. 라벤더가 하늘거리는 언덕 옆에는 가슴높이쯤의 호밀밭이 이어지고, 붉은 양귀비 꽃밭 한복판에는 빨간 공중전화 부스가 상큼하게 서 있다.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서는 향기 체험도 진행한다.
사진을 찍을 땐 꽃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허용된 통로로만 다녀야겠다. 사진을 다 찍고 나면 시원한 라벤더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해보자. 입안 가득 퍼지는 라벤더 향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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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호 호수

바다에서 내륙으로 약간 떨어져 송지호가 있다. 송지호는 둘레가 약 4km에 달하는 자연호수다. 빽빽한 소나무로 둘러싸인 호수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짠물이 섞여 겨울에도 잘 얼지 않는 송지호는 철새들에게도 인기다. 송지호 철새 관망 타워 내부에서 송지호를 찾는 철새들을 만날 수 있다.

5층 커피숍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바다와 호수를 한눈에 조망하고 있노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저 멀리 송호정과 왕곡마을, 바다 너머의 죽도까지 내려다보인다. 날이 좋으면 호수의 둘레길을 따라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대여해 송호정까지 둘러볼 수 있다.

펍 스트리트

가진항 자매횟집

동해안은 긴 해안선을 따라 지역마다 다른 물회를 맛볼 수 있다.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먹는 포항물회나 오징어 회를 잔뜩 넣어 먹던 강릉 물회와 달리 고성에서는 매콤한 국물을 살려 온갖 해산물을 넣어 먹는 물회가 유명하다.

가진항에는 고성의 독특한 물회를 파는 집들이 모여있다. 보통 2인분을 기본으로 차려낸다. 청량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매콤한 국물에 사과를 채썰어 듬뿍 담아 단맛을 낸다. 사각사각한 사과와 야채의 식감에 부드러운 가자미회, 오독거리는 해삼의 식감이 더해져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의 맛을 낸다. 소면까지 국물에 말아 먹으면 배가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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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_배나영

북튜브 ‘배나영의 Voice Plus+’를 운영하고, 여행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의 고정코너 ‘여행왓(What)수다’를 진행한다. 해돋이와 해넘이가 아름다운 곳, 광활한 자연과 인간의 문명이 조화로운 곳을 사랑한다. <리얼 방콕>, <리얼 다낭>, <호치민 홀리데이>, <앙코르와트 홀리데이>를 썼다. Instagram @lovelyba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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