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게, 코펜하겐
나만의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면,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는 어떨까. 편안하게, 따뜻하게, 함께 ‘휘게 라이프’를 즐긴다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라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잔뜩 가지고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뜻밖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온 ’국경 없는 포차’의 출연자들처럼.
왜 뉘하운일까
국경 없는 포차는 프랑스 파리와 덴마크 코펜하겐 등에서 박중훈·신세경·이이경·안정환과 윤보미가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한국의 정을 전파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사실 ‘국경 없는 포차’의 파리 편을 보았을 때만 해도 센 강과 포차가 안 어울린다 싶어 입을 삐죽 대며 지켜봤다. 파리 영업을 마친 팀이 코펜하겐 관문 역할을 하는 아담한 항구, 뉘하운에 2호점을 낸다는 예고를 보고서야 눈이 번쩍 뜨였다. 과거 선원들이 하루의 끝에 한 잔 기울이러 오던 선술집이 모여 있던 항구 뉘하운과 포차는 의외로 어울리는 조합 아닌가.
하루 종일 관광객을 실은 보트가 오가는 뉘하운 풍경
발트해와 북해를 잇는 좁은 해역에 자리한 코펜하겐은 중세부터 해상 무역의 요충지였다. 그래서 ‘새로운 항구’란 뜻의 뉘하운은 무려 1670년부터 3년에 걸쳐 건설된 항구다. 과거에는 무역상이 드나들었지만 지금은 운하 투어 보트의 출발지로 변모했다. 그 덕에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뉘하운을 찾는 여행자들은 그 옛날 선원들은 노천 카페나 항구에 걸터앉아 칼스버그 맥주(덴마크 국민맥주)를 마시며 쉬어 간다.
여기서, 노천 카페를 포차로 바꾸고, 칼스버그를 소주로 바꾼다면 국경 없는 포차가 뉘하운에 잘스며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은 적중했다. 수로를 둘러싼 알록달록한 건물들과 포차는 제법 잘 어우러졌고, 코펜하겐의 현지인과 그곳에 사는 한국인들을 속속 포차로 몰려들었다. 국경없는 포차 크루들은 손님들에게 불닭, 떡볶이, 라면 등을 정성껏 대접했다. 한국 음식을 사이에 둔 채 그들을 때로는 웃고, 노래하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가 안데르센이 살던 집 앞 아니예요?
덴마크 오덴세 출신의 세계적인 동화작가 안데르센도 뉘하운에 머물며 글을 썼다. 원래는 왕립극장 배우가 되리라는 꿈을 품고 코펜하겐으로 왔지만, 외모 탓에 작가로 방향을 돌렸단다. 그리고 비싼 방값을 감당하기 힘들어 세번이나 이사를 하며 동화 집필에 몰두 했다. 실제로 안데르센은 “내가 못생겼다고 놀림을 받아왔기에 ‘미운 오리 새끼’를 쓸 수 있었으며 지독한 가난을 겪은 덕에 ‘성냥팔이 소녀’를 썼다. 역경은 나에게 축복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국경 없는 포차 코펜하겐점은 뉘하운 67번지 안데르센이 ‘인어 공주’를 쓴 집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 덕에 포차를 찾은 손님들도 여기가 안데르센이 살던 집이라며 놀라기도 했다.
안데르센 동화 속 주인공, 인어공주를 만나려면 뉘하운에서 보트를 타고 바닷가로 가야 한다. 인어공주 동상은 벨기에의 오줌싸게 소년동상,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과 함께 유럽 3대 허무한 관광지로 꼽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순례하듯 동상을 찾는다. 칼스버그 맥주 2대 회장의 의뢰를 받아 만든 에드바르 에릭센의 이 인어공주 동상은 조각가의 전 여친이자 현 아내를 모델로 만들었다.
스트뢰에 거리에 가면 로열 코펜하겐도 있고, 루이스 폴센도 있고
인어공주 동상 말고도 코펜하겐 여행자라면 너나없이 찾는 곳이 있다. 스페셜 크루로 합류한 에이핑크 보미가 홀로 거리 홍보에 나섰던 ‘스트뢰에 거리’다. 현지인도 놀란 덴마크어 실력을 뽐내며 전단을 돌렸던 린 거리는 코펜하겐의 중심가이지 번화가로 시청에서 콩겐스 광장까지 이어지는 1.1km의 보행자 전용 도로다. 비록 보미는 궂은 날씨에 전단을 돌리느라 거리 구경을 제대로 못 했지만, 이 거리엔 로열 코펜하겐, 레고, 루이스 폴젠 등 덴마크 대표 브랜드 매장을 비롯해 아름다운 상점과 카페가 즐비하다.
국경없는 포차 홍보를 위해 보미가 전단을 나눠줬던 스트뢰에 거리
그 중 로열 코펜하겐은 1775년부터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덴마크 역사와 함께해 온 테이블웨어 브랜드다. 스트뢰에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르네상스식 건물에 자리한 로열 코펜하겐 플래그십 스토어에 가면 다양한 제품을 할인가에 살 수도 있다. 로열 코펜하겐의 상징인 ‘블루 플루티드' 라인을 비롯해, 블루 플투티드의 잔잔한 꽃무늬를 과감하게 확대한 ’블루 플루티드 메가’의 아름다운 디자인은 보기만 해도 눈이 즐겁다.
쇼핑을 하지 않더라도 로열 코펜하겐에서 운영하는 로열 코펜하겐 스무시 카페로 발길을 돌려보자. 플래그십 매장이 오리지널 ‘블루 플루티드’ 처럼 우아하다면 카페는 ‘블루 플루티드 메가’처럼 모던하다. 높은 천장엔 홀메고르 샹들리에가 찬란하게 반짝이고, 갈매기 패턴의 바닥 위에는 대리석 테이블과 테이블 높이에 맞춰 제작한 아르네 야콥센의 하이-앤트 체어가 놓여있다. 여기에 아기자기한 소품이 곁들여져 동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향긋한 홍차에는 셰프가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스무시’를 곁들여도 좋다. 스무시란 덴마크식 오픈 샌드위치, ‘스머르브로드(Smorrebord)’에 일본의 스시(Sushi)를 접목시킨 퓨전 메뉴로 가벼운 간식으로 그만이다.
로열 코펜하겐 플래그십 스토어 근처 루이스 폴센 본사에 쇼룸도 놓치면 아쉬운 장소다. 덴마크 가정의 30%가 쓴다는 폴 헤닝센 조명 감상을 위해 최적화된 장소다. 폴 헤닝센은 1925년 발표한 PH 램프를 시작으로 명작 디자인을 줄줄이 탄생시킨 조명 디자인의 선구자다. 197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루이스 폴센이란 회사와 같이 일한 덕에 본사 쇼룸은 폴 헤닝센의 작품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폴 헤닝센의 이니셜을 딴
PH램프 디자인의 핵심은 전등갓이다.
전등갓은 총 3장, 지름 비율은 4:2:1으로 전등갓이 이루는 곡선은 황금 비율을 따서 만들었다. 황금비로 구성된 전등갓이 각각 50%, 25%, 25%의 비율로 빛을 반사해, 곡선미와 눈부심 없이 부드러운 빛이 퍼져나가는 조도를 겸비한 조명의 완성형이라 불린다. PH아티초크(PH Artichoke)도 여전히 사랑 받고 있다. 북유럽에서 흔한 식자재인 아티초크에서 착안해 전등갓이 여려 겹으로 덮여 어느 곳에서도 전구가 직접 보이지 않고 갓에 빛이 반사돼 광선이 은은하게 번지도록 디자인된 것이 특징이다.
코펜하겐식 포차, 푸드 마켓을 아시나요?
뉘하운과 인어공주 상 그리고 스트뢰에 거리까지 쭉 훑어보다 보면 국경 없는 포차를 찾았던 손님들처럼 소박한 포차에서 따뜻한 음식과 술 한 잔을 즐기고 싶어질 지도 모르겠다. 그럴 땐 둘 중 한 곳으로 가며 된다. 푸드 마켓 토르브 할렌이나 바다 옆 스트리트 푸드 마켓, 코펜하겐 스트리트 푸드다. 토르브 할렌은 2011년에 문을 연 이래 성업 중인 실내 푸드 마켓이다. 커피, 과일, 치즈, 빵, 해산물 요리, 와인, 맥주 등 각종 식재료 구입은 물론 입맛대로 음식을 골라 실내 테이블에 앉아 맛볼 수도 있다. 북유럽 물가 대비 착한 가격도 매력 포인트다. 특히, 초입에서부터 진한 커피향을 풍기는 로스팅 카페 '커피 콜렉티브'는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서 커피가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런가 하면 항만의 신문 보관 창고를 개조한 코펜하겐 스트리트 푸드는 길거리 음식과 푸드트럭을 테마로 한 마켓이다. 정오만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코펜하겐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홀 안에선 각국의 길거리 음식을 의 푸드트럭도 맛있는 음식 냄새로 손님을 유혹한다. 이탈리아, 멕시코, 중국, 태국 음식을 비롯해서 잡채나 떡볶이를 파는 한국 음식까지 다국적 메뉴를 한자리에서 먹을 수 있다. 역시 다양하게 실컷 먹어도 저렴한 가격에 미소가 지어진다. 시원하게 펼쳐진 항구 풍경도 입맛을 돋운다. 노을 질 무렵의 ‘코펜하겐 스트리트 푸드’는 뉘하운만큼이나 운하의 도시 코펜하겐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친구와 담소를 나누며 노을과 맥주와 노을을 즐기는 코펜하겐 사람들
미켈러바에서 수제맥주를
코펜하겐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빅토리아 거리 맥주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미켈러 본점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미켈러는 2006년 미켈과 크리스티안이 의기투합해 만든 수제맥주다. 자신의 집과 학교 부엌에서 양조를 하던 미켈이 고등학교 과학 교사 자리를 박차고 나오며 새로운 맥주 개발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15년 전 세계 맥주 덕후들이 맛을 평가하는 사이트 ‘레이트 비어(ratebeer.com)’에서 올해의 주목할 만한 양조장으로 선정될 만큼 성장했다. 미켈러 러닝 클럽이라는 독특한 음주 문화도 전파했다. 건강하게 오래 맥주를 즐기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같은 티셔츠를 입고 달리는 모임이다. 달리고 난 후엔 함께 미켈러를 마신다. 함께 땀 흘려 뛰고 난 후, 맥주를 편안하게 홀짝인다니, 그게 바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는 덴마크인들의 휘게 라이프가 아닐까.
글_우지경
유럽이 좋아 틈만 나면 유럽을 들락거리다 북유럽의 매력에 반했다. 그 덕에 최근 <스톱오버 헬싱키>라는 여행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