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또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의 바지 주머니에 처음 보는 작은 장난감이 들어있다면 부모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기 마련이다. 우리 아이가 남의 물건을 가져오다니! 도둑질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는 옛말이 떠오르며 아이를 따끔하게 야단을 쳐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 어려서 잘못을 모르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두 번쯤 경험했을 일이기도 하다. 남의 물건을 가져오는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박사 S 다이어리
남의 물건을 가져오는 아이, 어떻게 해야 하나?
글_손석한(연세신경정신과 원장)
먼저 아이가 물건을 훔치게 되는 원인을 살펴보자. 아이들은 계획적으로 물건을 훔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즉흥적으로 눈앞의 물건들을 갖고 싶어서 훔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충동 또는 욕구를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아이는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 또는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얻어야만 마음이 풀리곤 한다. 이와 같이 욕구 충족을 지연시키지 못하는 아이는 충동 조절 능력이 부족한 경우다. 대체로 이런 아이는 주의가 산만하고 과잉행동의 경향이 있다. 또한 어려서부터 부모가 아무런 제한 없이 무엇이든지 아이의 요구대로 들어주는 양육 태도가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와 반대로 지나치게 금지시키는 부모의 경우, 아이는 물건을 훔치려는 행동을 보인다. 아이들은 대개 원하는 것을 부모에게 요구한 다음 손에 얻게 되는데, 어떤 부모는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인색하여 아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할 때 일언지하에 거절하거나 혼내곤 한다. 그러면 아이는 부모로부터 필요한 물건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물건을 훔치게 되고, 또 부모가 무서워서 거짓말까지 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정서적인 문제도 중요한 원인이다. 부모와의 관계 또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하거나 또는 불만족스럽게 여기는 아이는 물건 훔치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욕구를 대리 충족시키려는 심리적 동기가 있다. 그 밖에도 친구들에게 좋은 물건이나 특이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훔치거나, 친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훔친 물건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서 자주 보인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개 부모들은 아이의 훔치기 행동을 확인하는 순간 또는 의심하는 순간부터 호되게 야단치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원인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여러 원인들 중 우리 아이가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지 알아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따끔하게 혼내는 것은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 뿐이다.
3~4세의 경우 아직 소유 개념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자기가 가지고 싶은 것은 자기 것이라고 우기거나 또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진열장 또는 다른 아이 집에 있는 물건을 가져오곤 한다. 아직 인지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기이고, 또한 도덕적 개념에 대한 발달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따라서 부모는 차분한 어조로 아이에게 잘못을 가르쳐 주고 교육시켜야 한다. 즉 가르치면 되는 문제지 큰 문제로 여길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연령 혹은 그 정도 연령이라도 잘못을 인지한 상태에서 아이가 남의 물건을 집어 온다면 조금 더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더 강하고 분명한 어조로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교정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매를 들고 따끔하게 혼내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아이의 눈높이, 즉 아이의 인지적 이해 능력 내에서 설명을 해야 한다.
남의 것과 나의 것이 구분되어 있으며 남의 것을 가져오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어서 부모가 싫어한다는 것도 아이에게 설명한다. 만일 아이가 옆집에서 물건을 가져 왔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아이와 함께 가서 그 물건을 돌려주는 모습을 보여 준다.
훈육을 할 때는 감정적으로 심하게 야단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는 아이가 나중에 잘못될까 불안해져서 아이가 잘못한 만큼의 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체벌을 가하기 쉽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잊어버리고 부모에게 혼났던 기억만을 마음의 상처로 남겨두기 쉽다. 중요한 것은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다. 따라서 벌을 주더라도 신체적 체벌이나 감정적으로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라 행한 행동에 대해 부모가 좋아하지 않으며 또 그러면 실망할 것이라는 등의 말로 잘못을 교정해 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아이의 기질도 고려하는 것이 좋다. 비교적 순한 기질의 아이에게는 잘못을 지적하고 잘 타이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에게는 부모의 훈육을 자신에 대한 비난이나 미움으로 받아들이지 않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아이의 잘못한 행동을 지적하고 야단치는 것이지 아이 자체가 미워서 야단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얘기해 준다. 그래야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부모의 훈육을 경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겁이 많은 기질의 아이에게 지나치게 처벌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에게 공포 또는 불안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다음부터는 감방으로 가서 엄마 아빠를 보지 못하게 될 거야.” 식으로 겁을 주는 것은 불안 성향이 높거나 겁이 많은 기질의 아이에게는 삼가야 한다.
훔친 물건을 돌려준 다음에 부모는 같은 물건을 새로 사 줄 수 있다. 대신에 아이와 분명한 약속을 해야 한다. 다시는 물건을 훔치지 않고, 무척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부모에게 사달라고 요구할 것을 일러준다. 하지만 부모가 사 주지 않는다고 해서 또 물건을 훔치게 된다면 그때는 절대로 사 주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점들을 미리 아이에게 가르쳐 준다.
물건을 훔치는 것은 발달 과정상 매우 흔한 일이다. 부모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꽤 많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교정하기도 한다. 부모, 교사, 친구, 책 등을 통해 물건 훔치기가 매우 나쁘고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자신이 깨닫기 때문이다. 사실 부모 자신도 어린 시절 과거의 자신을 회상해 보면 한두 번쯤은 물건을 훔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도둑이 아니지 않는가? 아직 미숙한 아이이기 때문에 잘못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하고, 무엇이 잘못인지 옳은 것인지 배워나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또한 아이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다. 부모는 그저 역할을 다 할 뿐이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으며 또 다시 최선을 다한다.
만일 이와 같은 부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도벽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앞에서 말한 여러 원인적 측면의 교정이 쉽지 않은 경우이므로 전문가(소아정신과 또는 아동상담센터)를 찾아가서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또한 도벽 외에도 동반되는 문제(과잉행동, 충동성, 공격적 행동, 반항, 거짓말, 학습부진, 왕따 등)가 많을 때는 반드시 소아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 및 치료가 필요하다.
글을 쓴 손석한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의학박사로서 현재 연세신경정신과-소아청소년정신과를 운영하고 있다. 각종 언론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잔소리 없이 내 아이 키우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자문위원으로서 홈페이지에 슈퍼맨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