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밥상 여행


물새 한 마리 접시 위로 날아 와

안면도 천수만 새조개초밥

글/사진_손현주(음식 칼럼니스트)

이번엔 서쪽으로 건너왔다. 새조개를 말하지 않고 겨울을 보낸다는 것은 미식가의 도리가 아니다. 쫄깃하고 달달한 새조개를 먹어야 겨울을 제대로 보내고 봄을 얘기할 수 있다. 새조개는 까놓은 모양이 새의 부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껍데기 크기도 모양도 감자처럼 동그랗게 생겼다. 새조개는 표면이 약해서 양 손에 쥐고 대각선으로 비틀면 뚜껑이 오도독 소리를 내며 열린다. 한쪽 껍데기에 살점이 드러나니 칼이 필요 없는 조개다. 속살을 접시 위에 펼쳐 놓으면 마치 새 한 마리가 천수만을 날아가는 것 같다. 딱 이맘때, 조개 중 최고의 맛을 지닌 제철 미식이니 막 봄이 오기 전, 새조개 한번은 먹어야 몸에 봄 솜털이 올라온다. 이것이 천수만으로 떠나야 하는 이유이다.

새조개 서식지인 홍성과 안면도 경계 상펄 ▲ 새조개 서식지인 홍성과 안면도 경계 상펄

새조개가 천수만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생태계의 변화가 준 선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바닷가에 제방을 쌓고 간척지를 만들어 농지를 넓혀가던 시기가 있었다. 들쭉날쭉 리아스식 해안의 서쪽 질 좋은 갯벌들은 금이 그어져 민물을 가둬놓기 시작했다. 서산과 홍성, 태안 세 개의 시군이 물린 서산AB지구 또한 그렇게 사람의 힘으로 단절 되어 갯벌은 농지로 탈바꿈 되었다. 1984년 고 정주영회장이 세계 최초 폐선 물막이 공사로 거센 물살을 끊었던 일 대개 기억할 것이다. 간척 이전 천수만은 질 좋은 갯벌에서 조개와 굴 등 해산물이 지천이었다. ‘물속의 둔덕’ 상펄을 중심으로 물고기 산란장 역할을 했다. 봄, 가을이면 도요새가 날아들었고, 갯벌에 몸을 기댄 사람들은 고단했지만 검은 흙을 파내 자식들 대학공부 다 시켰다.

안면도 바닷가 풍경 ▲ 안면도 바닷가 풍경

그런데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생태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 흔하던 바지락이 사라지고 갯벌은 비어갔다. 갯벌로 황토가 유입되면서 환경이 바뀌니 없던 생물이 생겼는데, 새조개는 방조제 이후 갑자기 생겨 남당리와 안면도의 명물이 된 것이다. 그러나 본래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양이 많지 않았었고, 그 오묘한 단 맛을 사람들이 몰랐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만 이 무렵 번성했고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새조개는 일본에서 최고급 초밥재료로 친다. 그간 서남해안에서 잡히던 새조개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었고 국내에서는 맛보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천수만 간척지가 개발되면서 이렇듯 새조개 산란지로 최적화 된 것이다. 그 흙이 흘러든 남당리 인근 죽도는 새조개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이다.
새조개는 수심 30미터에 서식한다. 배는 뒤편에 직사각형 틀을 단 그물자루를 달고 다닌다. 전문용어로 형망 작업이라고 한다. 여러 개의 쇠갈퀴가 달려 배를 끌며 채취하는 어구이다. 문제는 남획이다.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돈이 되니 형망은 바다 속을 훑어 나갔다. 어마어마한 양이 긁어내지고 어장의 새조개는 씨가 말랐다. 그래서 근래에는 형망을 금지시키고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잡아낸다. 새조개가 귀하니 가격도 많이 올랐다. 그때그때 다르지만 껍데기 채 1킬로그램에 2만원은 한다. 까면 양이 작아서 소고기 값 보다 비싸다는 얘기가 나온다. 새조개는 산란기가 지나고 살집이 오른 이즈막 맛이 제일 좋다. 연초에도 간간히 나오나 아무래도 2월말에서 3월초께 돼야 통통하게 맛이 오른다.

한국 사람들이 새조개를 먹는 방식은 배추나 무 등 야채를 넣은 육수에 살랑살랑 데쳐먹는 ‘샤브샤브’이다. 펄펄 끓는 물에 살짝 잠갔다가 간장이나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다. 개인적으로 새조개는 초고추장을 찍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양념 맛이 강해 새조개가 지니고 있는 본연의 향과 단맛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싱거운 다시마 간장 살짝 찍거나 그냥 먹어도 좋다.
그러나 단 하나를 먹더라도 온 몸에 전율이 일도록, 응축된 맛을 끄집어내는 방법은 역시 초밥이다. 새조개의 쫄깃한 단맛과 밥알이 입안에서 고추냉이와 어우러지며 콧등을 탁 치는 조화는 무릎을 치게 만든다. 그런데 새조개를 먹을 수 있는 남당리와 안면도 인근에서 새조개 초밥 내놓는 곳을 못 봤다. 그러니 재료를 사다가 집에서 수선을 떨어본다. 아, 의외로 어렵지 않고 만족도가 높다.

갓 깐 싱싱한 재료는 회로도 먹지만 초밥용은 끓는 물에 스치듯 데쳐서 사용한다. 마른행주로 물기를 제거하여 칼로 조갯살을 넓게 펴는 작업이 첫 번째 만지기다. 초밥은 쌀밥의 질이 중요하니 고슬고슬하게 짓고, 부채로 휘휘 식혀가며 만들어 놓은 초대리(식초, 소금, 설탕, 다시마, 레몬즙)를 섞는다. 밥을 한입거리로 떼어내 생고추냉이를 살짝 묻혀 새조개와 뭉치면 된다. 초밥집이 아니니 대략 감으로 조절하지만 실패확률은 적다. 아이들은 간장만 찍어먹게 하지만 고추냉이 좋아하는 어른들은 눈물 찔끔 흘려가며 맵게 먹어도 입맛이 확 돋는다. 새조개는 독특하게 단맛이 있고 과일향이 난다.
누구는 ‘바다의 닭고기’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일반적인 조갯살과 식감이 많이 다르다. 새조개 초밥을 만들어 놓고 오크 느낌이 적은 화이트와인 샤도네이나 소비뇽블랑 한 잔 곁들이면 봄이 코앞에서 서성거릴 것이다. 서산 해미에서 사온 맑은 토속 국화주와도 기막히게 어울렸다. 그렇게 섬사람들의 봄맞이는 끝났다.

*새조개를 즐기고 살 수 있는 곳(충남 홍성군 남당항 인근,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백사장항 인근 수산이나 어판장들)

글을 쓴 손현주는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여행 작가 겸 사진가로 20년간 잘 다니던 신문사에 홀연히 사표를 내고 2010년 안면도로 귀향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집에서 글을 쓰고 섬을 떠돌며 사진을 찍는다. 그녀는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읽고 쓰며 사진을 찍는 삶을 꿈꾼다. 지은 책으로는 신작 『열두 달 계절 밥상 여행』을 비롯하여 『와인 그리고 쉼』, 『태안 섬 감성 스토리』 등이 있다.